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르됭 전투 (문단 편집) == 일화 == * 이 전투의 프랑스군 주역들은 비참한 끝을 맞이했다. * [[필리프 페탱]]의 경우 전후 한동안 추앙받았고, 특히 베르됭에서는 베르됭의 영웅, 베르됭의 해방자라 하여 베르됭 전투 수훈자 명단을 적은 명판을 만들어 최상단에 페탱의 이름을 걸었고, 전투를 기념하는 건물 안에는 페탱의 초상화가 제일 크게 걸려져 '''있었다'''. 왜 과거형이냐면, [[제2차 세계 대전]] 종전 이후 페탱의 대독 부역혐의 때문에 죄다 철거되거나 명단에서 삭제당했기 때문이다. 비슷한 이유에서 베르됭 전몰자 묘역에는 본래 페탱이 묻히기로 예정된 장지가 있었으나 '''지금도 텅 비어있다.''' * 페탱이 경질된 이후 지휘를 맡아 승리를 이끌어낸 [[로베르 니벨]]은, 조프르의 뒤를 이어 프랑스군 총사령관이 된다. 그리고 해가 바뀐 1917년 '''[[니벨 공세|1차대전에서 프랑스군 최악의 참패를 만들었다.]]''' * 훗날 [[프랑스 해군]] [[원수(계급)|원수]]가 되는 [[프랑수아 다를랑]] [[제독]]도 [[위관급 장교]]로서 해군 육상 포병 부대의 일원으로, 프랑스 대통령이 되는 [[샤를 드골]] 육군 보병 대위가 이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고, 독일군에서도 [[귄터 폰 클루게]], [[발터 모델]] 등 제2차 세계대전에서 원수의 지위에 오르는 자들이 위관급 장교로 참전했다가 중상을 입었다. [[드레퓌스 사건]]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 육군 포병 소령도 참전했다. * 6월 초 보 요새에서 고립된 프랑스군이 구원을 청하는 마지막 [[전서구]]를 보내 기적적으로 프랑스군 진영에 도착한 뒤 생을 마감했다. 프랑스 측에서는 이 전서구에게 [[레지옹 도뇌르 훈장]]을 수여하고 박제하여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[* 앨리스터 혼 저, 조행복 역 <베르됭 전투>. (원본출간 1962, 한국 번역출간 2020) 한국출간본 기준 415p]는데 각주에 적힌 출처에서도 정확한 출전이 나오지 않고 있고 웹상에서도 해당 전서구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는 언급은 있지만 수훈 명단에서는 확인이 안 된다. 아마 사람이 아닌 생물이어서 공식 명단에는 없거나, 일종의 착오가 있었던 듯. 다만, 이 전서구는 본의 아니게 더 많은 프랑스 군인들을 희생시켰다. 함락된 줄 알았던 보 요새가 아직 저항 중이라는 소식에 열광한 프랑스군 지휘부는 고립된 아군을 구하기 위해 1주일에 걸쳐 대규모 공세를 펼쳤고 모조리 실패하여 최소 수천 명 이상의 인명이 희생되었다. 참고로 보 요새에 고립되어 있던 병력은 최대 600여 명 추산. 고립된 부대 입장에서야 구원을 청하는 게 당연하고, 지휘부 입장에선 아군을 구하려는 시도를 하는 게 당연하니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. * 1916년 5월 프랑스의 두오몽 요새를 점령한 독일군 병사들 중 일부가 물자가 떨어져가는 상황에 커피를 끓이려고 보니 장작이 없어서 '''[[벡셀아파라트 M1917|화염방사기]] 연료'''로 불을 때웠는데, 155mm 포탄을 쟁여놓은 자리 바로 옆에서 끓이는 바람에 이들이 [[연쇄폭발]]을 일으켜 600명 가량이 즉사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하는 참사를 겪었다.[* 요새와 같이 견고하고 좁은 공간에서는 충격파가 벽에 반사되어 희생자에게 수십 번씩 부딪히는데, 이 때문에 실내에서의 폭발로 인한 사망률은 야외 대비 약 600% 높았다고 한다.] 더 불쌍한 일은, 기적적으로 몇몇이 요새를 탈출했는데 난데없는 대폭발에 놀란 요새 밖 병사들이 폭발로 인한 연기와 검댕으로 피부가 새까매진 생존자들을 보고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 군대가 몰래 침투하여 공격해온 것으로 오인하여 모조리 사살했다는 것이다. 당연히 프랑스 측도 이 폭발로 솟아오른 연기를 목격했고, 이 기회를 타 두오몽을 재탈환하는 공세를 개시했으나 여러 번 실패했고, 10월이 되어서야 식민지군이 점령에 성공했다. 독일은 요새에서 즉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기로 하고 터널을 막았는데, 이 터널은 오늘날 전쟁기념물이 되었다. * 전투 중 프랑스군은 탈환한 자군 참호에서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. 참호선이 통째로 매몰되어 있었고 그 위로 총검들이 솟구쳐 있었던 것이다. 발굴해보니 총검 바로 아래에 수백여 명의 프랑스군 병사들이 생매장되어 있었다. 프랑스군 지휘부는 이들이 총을 꼭 쥔 채 참호를 굳건히 지키다 포격에 의한 산사태로 매몰된 것으로 추정하고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죽은 이들을 추앙하며 이를 참호선의 총검이라 부르고 있다.[* 현실적으로 그렇게 우연히 시신들 위치마다 총검이 튀어나올 리는 없고, 적군인 독일군이 프랑스군 시신들을 수습해주고 묘지에 꽂는 십자가 대신 그들의 총검을 대신 꽂아준 거 아니냐는 말이 있고 이쪽이 더 설득력 높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측에서 그렇게 시신을 수습해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포격에 의한 집단매몰로 주장하고 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